[시론] 누드가 예술되려면...

사진작가 없는 이승연누드 … 위안부, 예술소재 될수있어

소위 ‘이승연 일본군 위안부 누드영상물 파문’이 노상 주차장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필름과 인화 사진을 불태우는 ‘공개 화형식’이라는 기막힌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열흘 넘게 계속된 이 사태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에 횡행(橫行)하고 있는 ‘예술을 빙자한 외설(猥褻) 비즈니스’의 적나라한 현주소가 들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슬픈 일은 타들어가는 필름더미를 놓고 마땅히 통곡과 애도의 눈물을 보여야 할 사진가의 부재였다. 누구도 제작된 사진영상에 담긴 표현의 의도나 파장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고, 자신의 역사 의식에 기반한 해석을 밝히지 못하는 이 사건의 인과응보적 비극 앞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예술의 가장 큰 미덕은 당연히 ‘표현의 자유’다. 사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가 어두운 역사 체험이라고 해서 예술가들이 다룰 수 없는 금기(禁忌) 사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우리에게는 아픈 과거이지만, 예민한 국민적 정서를 건드릴 수 있다고 해서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재가 무엇이든 예술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작가의 해석이며, 그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시각이다.

작가의 의도와 소재가 한 작품 속에 녹아들어 세계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해줄 수 있을 때, 예술은 일상이 못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으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뛰어난 사진가가 새로운 시각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누드 사진 작품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예술로 승화된 누드를 감상하며 뼈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위안부 누드 파동은 철저하게 사진가의 부재(不在), 예술의 부재 속에 이뤄졌다. 화려하고 우아하게 포장된 제작발표회에서 ‘작품 운운’하던 일성(一聲)이 뻔한 상술(商術)이었음은 바로 거기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이승연이 이름난 여배우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단지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리며 자갈마당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 자체가 비겁한 상업성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방증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간 누드 영상물의 소비에 열을 올린 감상자들이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되어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범(共犯)범주로부터 온전히 비껴설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각기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며 이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왔지만, 종국에는 공히 필름 화형식이라는 또 하나의 이벤트를 통해 스스로에게 후련한 면죄부를 주려 하는 초라한 자화상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다 함께 마치 그 필름과 거기에 담긴 여배우의 이미지가 무슨 원흉이기라도 한 것처럼 영상시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연출한 것이다.

요즘 사진계에는 유명 사진가 누구누구가 아무개의 누드 사진을 찍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들에게도 거액의 계약금을 앞세운 유혹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선뜻 응하는 작가가 많지 않다. 이는 아마도 그 모든 상업적 거래를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스스로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기존의 질서와 상식, 통념을 거스르면서 첨예한 역사와 종교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왔다. 그에 대한 감상자들의 반응이 지탄이든 찬사든 마지막 책임은 작가 스스로가 진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예술로서 정당하게 설 수 있는 힘이고, 예술과 외설을 가르는 무서운 백지 한 장인 것이다.

신수진·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